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市場이 北 체제의 아킬레스腱이다 
김정은은 안다,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해주지 못하면 자기가 죽는다는 걸

박정훈 논설위원


탈북한 지 10년이 넘었는데도 악몽을 꿉니다. '고난의 행군'이라고 하죠? 1990년대 후반 식량난 말입니다. 죽음의 문턱을 오간 시절이었습니다. 배를 곯는다는 게 얼마나 잔인한 고문인지 기자님은 모릅니다. 저는 아직도 굶는다는 것에 대한 공포가 있습니다. 2500만 북한 주민이 다 그럴 겁니다. 이 트라우마를 모르고선 절대 북한을 이해 못 합니다.

 

작년 초 김정은 신년사를 보고 울컥했습니다. "능력이 따르지 못해 안타까움과 자책 속에서 (2016년을) 보내고…". 인민 생활 향상을 위해 노력했지만 잘 안돼 미안하다는 취지였습니다. 전 제 귀를 의심했습니다. 북한에서 수령은 신(神)입니다. 어떤 오류도 있을 수 없는 존재지요. 그런 절대자가 능력 부족을 자인하다니, 이게 뭔가 싶더군요. 독재자의 위선일까요. '악어의 눈물'일까요. 그게 다는 아니라고 봅니다. 김정은도 인민을 의식하는 겁니다. 먹고사는 문제를 잘못했다간 큰일 난다는 위기감이 있는 겁니다.

 

김정은이 갑자기 개과천선한 건 아니겠죠.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습니다. 20년 전 '고난의 행군' 때 수십만명이 굶어 죽었습니다. 그래도 체제가 유지됐습니다. 오랜 우상화와 세뇌 때문이죠. 인민들은 불만이 많아도 일말의 충성심이 있었습니다. 지금은 아닙니다. 김정은에겐 '혁명 자산'이 없습니다. 새파란 20대 나이에 갑자기 등장했습니다. 인민들은 그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습니다. 존경심도, 충성심도 없습니다.

김정은이 처한 상황은 아버지와 다릅니다. 외부 정보가 대량 유입되고 있습니다. 주민들은 남한 사정을 다 압니다. 남한 드라마를 보고 남한 방송을 듣습니다. 북한이 얼마나 뒤떨어졌는지 모르는 사람이 없습니다. 먹고살기 힘들어지면 체제가 위협받는 구조가 됐습니다. 20년 전 같은 경제난이 또 오면 북한은 무너집니다. 누구보다 김정은 본인이 잘 압니다.

 

이 모든 상황의 출발점이 '고난의 행군'입니다. 경제가 마비되자 김정일은 고육지책으로 장마당을 허용했습니다. 시장을 만들어줄 테니 그걸로 먹고살라 한 거죠. 이제 장마당은 북한 경제의 중추입니다. 장마당을 통해 물자가 오가고 생필품이 거래됩니다. 남한 정보도 장마당을 통해 들어옵니다. 체제 유지를 위해 도입한 장마당이 체제의 명줄을 쥔 아킬레스건(腱)이 됐습니다. 아이러니한 일이죠.

북한은 더 이상 고립된 계획경제가 아닙니다. 사실상 시장경제나 다름없습니다. 시장은 '채찍'으로 움직이지 않습니다. 김정은이 시장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습니다. 장마당 때문에 대외 의존도도 높아졌습니다. 중국 등을 통한 교역이 막히면 시장이 무너집니다. 대북 제재에 북한이 경기(驚氣)를 일으키는 까닭이 이겁니다. 장마당이 북한을 제재에 취약한 구조로 만들었습니다. 그렇다고 시장경제 실험을 되돌릴 수도 없습니다. 호랑이 등에 올라탄 거죠.

 

새해 벽두 시작된 김정은의 대화 공세가 세계를 놀라게 했습니다. 그런데 사실 김정은이 손을 내민 것은 그보다 한 달도 전의 일입니다. 작년 11월 미사일 실험 후 북한이 '핵 완성'을 선언하지 않았습니까. 대기권 진입 기술이 남았는데도 '완성'이라고 우겼습니다. 완성이 뭡니까. 더 이상 실험이 없다는 뜻입니다. 이제 미사일을 안 쏠 테니 협상하자는 신호를 보낸 겁니다.

 

그래도 한국·미국의 반응이 없자 올 신년사엔 평창을 끌어들입니다. 남은 올림픽, 북은 '공화국 창건' 70주년이란 쌍(雙)경사가 있으니 잘 해보자고 합니다. 아니, 올림픽하고 '공화국 창건'하고 무슨 관련이 있습니까. 어떻게든 명분을 만들려고 억지로 엮은 겁니다. 그것도 모자라 여동생까지 보냅니다. 그만큼 다급하다는 얘기겠죠.

 

김정은이 2012년 연설에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인민이 다시는 허리띠를 조이지 않게 하며…." 그는 '사회주의 부귀영화'를 누리게 해주겠다는 놀라운 약속을 합니다. 자본주의 냄새가 진동하는 용어까지 썼습니다. 저는 이게 빈말은 아니라고 봅니다. 김정은이 인민을 사랑해서가 아닙니다. 잘 먹고 잘살게 해주지 못하면 자기가 죽는다는 걸 알기 때문입니다.

 

김정은은 정말 급합니다. 국제 제재가 숨통을 조여옵니다. 제재가 계속되면 견디지 못합니다. 시장이 무너지고 체제가 흔들립니다. 핵과 미사일로 허세 부리지만 김정은은 약세에 몰려 있습니다. 칼자루를 쥔 것은 이쪽입니다.

 

문재인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이 더 거칠어질 필요가 있습니다. 협상 테이블에 앉은 김정은을 끝까지 몰아붙여야 합니다. 완전한 비핵화를 얻어낼 절호의 기회입니다. 만에 하나 적당히 타협해 또 핵을 연명시켜준다면 역사에 대한 반역입니다.

※탈북자 출신 북한 전문가 A박사 인터뷰를 토대로 했습니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8/03/22/2018032203493.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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