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초 미국과 중국으로부터 놀라운 이야기를 들었다. 우리와 접촉한 북측 인사가 공개 처형됐다는 것이다.”(『대통령의 시간』356페이지)

 이명박 전 대통령은 회고록에서 대남 밀사(密使)의 비극적인 최후를 공개했다. 북한의 연평도 포격 도발(2010년 11월 23일) 직후인 그해 12월 5일 북한 국가안전보위부 고위급 인사가 서울을 방문했다가 이 전 대통령을 못 만나고 돌아간 뒤 처형됐다는 것이다. 복수의 정보 소식통들은 이 인사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핵심 측근이었던 류경 보위부 부부장이라고 전했다.

▷여기를 누르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회고록 집필에 참여한 한 인사는 29일 당시 이 전 대통령이 류 부부장을 만나주지 않은 이유를 설명했다. 그는 “천안함과 연평도에 대해 책임 있는 확실한 사과나 메시지를 갖고 온 게 아니라 급도 낮은 실무자를 보내 무마하려고 해 대통령이 만날 이유가 없었다”고 말했다. 이 바람에 북으로 돌아간 류 부부장은 오히려 남한에 기밀을 누설한 혐의를 받았고, 대통령 면담이 실패했는데도 서울에 하루 더 머물다 돌아가 김정일 위원장이 화를 냈다고 한다. 결과적으로 권력 세습을 준비하고 있던 김정은 측과 군부에 의해 제거됐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이 전 대통령은 회고록에서 밝혔다. 일본 아사히신문은 류경이 처형된 이유를 김정은의 후계 권력 구축작업을 하던 장성택 노동당 행정부장(김정은의 고모부)이 류경의 약점을 잡아 김정일에게 보고했기 때문이라고 2011년 7월 보도했다. 보고를 받은 김정일이 술을 같이 마시자는 핑계로 류경을 초대소로 불렀고 현장에서 체포했다고 이 신문은 전했다.

 대북 소식통들은 2010년 12월 류경을 상대한 우리 측 인사는 김숙 국정원 1차장이었다고 전했다. 그로 인해 김 전 차장은 나중에 류경이 자신을 만난 뒤 처형된 사실을 전해 듣고 “심적으로 괴롭다”는 말을 주변 사람들에게 했다고 한다. 하지만 류경 숙청에 앞장섰던 장성택 부장도 2013년 12월 김정은에 의해 비극적인 최후를 맞았다. 1992년 경제시찰단을 이끌고 내려왔던 김달현 부총리는 김일성 주석의 친인척이었지만 숙청된다는 소식을 듣자 자살을 택하기도 했다.

 이처럼 북한의 대남 밀사들은 실패하면 목숨을 내놓아야 하기 때문에 사생결단식으로 남측과의 협상에 임한다고 정부 고위 당국자가 전했다.

 북한 대남 비선 인사들의 초조한 심리 상태는 이 전 대통령 회고록에서도 확인된다. 김정은 체제에서 대남 비서로 승진한 김양건 통일전선부 부장은 2009년 10월 싱가포르에서 임태희 당시 노동부 장관을 만나 “합의문도 없이 돌아가면 죽는다”고 하소연했다고 이 전 대통령은 적었다.

 이명박-김정일 정상회담을 주선하기 위해 노력한 원자바오(溫家寶) 전 중국 총리의 발언에서도 북한 대남 일꾼들의 행태가 드러난다.

회고록에 따르면 2011년 5월 22일 일본 도쿄에서 이 대통령을 만난 원 총리는 “2009년의 일(정상회담 무산)에는 이상한 점이 있다고 생각한다”며 “김정일 위원장은 아무런 조건도 이야기하지 않았다. 그러나 대통령께선 북한이 여러 가지 조건을 제시했다고 알려줬다”고 의문을 표했다. 그러면서 “솔직히 말하면 김 위원장 밑 사람들의 권력이 매우 크다는 것을 느꼈다. 대통령께서 김 위원장을 직접 만나시는 것이 옳다”고 충고했다.

정상회담 성사를 위해 움직이는 북측 인사들이 숙청의 두려움 때문에 남측으로부터 뭔가 큰 것을 얻어내려고 김정일이 지시하지도 않은 조건을 제시하는 바람에 정상회담이 무산됐다는 아쉬움을 원 총리가 토로한 셈이다. 실제로 2009년 11월 북측은 임태희 장관과의 싱가포르 접촉에서 옥수수 10만t과 쌀 40만t, 비료 30만t, 아스팔트 건설용 피치 1억 달러어치, 북측 국가개발은행 설립 자본금 100억 달러를 요구해 합의가 무산됐다.

장세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