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인식목사 연재 목회칼럼

돌탕목회의 영향력과 영향권-2

 

(지난 3월호에 이어 돌탕목회의 영향력, 그리고 돌탕목회가 어떤 영향권을 만들어 내었는지를 이번 4월호에까지 계속 정리해 보려고 한다)

영향이 없는 목회는 어쩌면 생명력이 끝난 목회라고 부를 수 있다. 나의 은사, 김상복 목사님의 표현과 같이 “존경은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얻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목회의 영향력은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끼치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세상을 구원하고, 세상을 변화시키고, 세상의 사고방식을 뒤집어 버리는 생명력이다. 회개, 돌아섬, 내려놓음, 버림, 씻음, 비움, 낮아짐, 밝아짐 등은 복음 안에 있는 생명력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이것이 복음의 영향력이다. 그런데 만일 한국교회가 이같은 복음의 영향력까지 잃어버렸거나 중단되었다면 교회, 목회자, 기독교라는 호칭을 무슨 얼굴을 들고 누릴 수 있겠는가?! 돌탕 목회의 영향력은 바로 이같은 복음의 생명력으로 교회와 성도들의 삶에서 이곳 저곳, 구석 구석 영향권을 확대해 나가는 것이다. 지난 2월호에서 다룬 6가지 영향권에 이어서 이번 3월호에서는그 외 7가지의 영향권을 다루려고 한다.

 

 7. 사고방식


돌탕으로써 돌이켜 보면, 하늘 아버지께 온전히 돌아온 탕자에게서 나타나는 사고방식의 변화는 가히 폭발적이다(눅15:21). 아버지를 떠나 세상에서 자기 중심에 빠져 교만을 떨 때는 상상할 수도 없었던 사고방식으로 돌탕은 이렇게 말한다. "내가 아버지께 죄를 얻었사오니", 또한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치 못하겠나이다"라고 돌탕은 고백한다. 생각해 보면, 이보다 더 엄청난 사고방식의 전환이 있을까?! 자신이 변명할 여지가 없는 죄인이 되어 아버지께 돌아온 것이라는 사고방식이 작동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그렇게 고백하지 못한다. 이런 돌탕들을 베델목회의 23년간 참 많이도 보았다. 


모든 교회생활의 밝음과 어두움은 각자의 사고방식에서 비롯된다. 예수를 믿어도 사고방식은 하나도 바뀌지 않은 사람들이 교회를 어둡게 하고 흔들리게 한다. 하워드 헨드릭스 박사의 지적대로, 한 사람의 의식이 그 사람의 행동을 결정하는 지수가 되는 것이다. 교만한 교인들의 사고방식, 피해의식에 젖은 교인들의 사고방식, 교회생활을 정치의 연장으로 여기는 교인들의 사고방식 등등이 교회의 하나됨에 악영향을 끼치고 교회의 혼란과 분열에 절대적인 원인제공이 된 것이 얼마나 많은가!? 


베델교회의 돌탕목회 현장에서 가장 인상 깊은 것은, 여러 활동, 봉사, 회의참여 등으로 교회를 자신의 무대로 삼았던 이들의 사고방식이 확 바뀌는 것이었다. 교회는 더 이상 자신들의 영토가 아니고, 속된 말로 “나와바리”도 아니고, 자기 사고방식으로 좌지우지 할 수 있는 인간의 정치무대가 아닌 것이다. 교회는 하나님의 무대이고 그러므로 교회생활은 두렵고 경건하게 임해야 한다. 


한분 기억 속에 살아있는 형제는 타 도시에서 교회를 다니다가 얼바인으로 이사오면서 베델교회를 출석하기 시작한 교인이다. 오래지 않아 그분에 관해 듣게 된 것은, 이전 교회에서 그분이 교만하며 횡포를 부리고 수많은 교인들의 신앙생활을 가로막았다는 무시무시한 전력이었다. 그런 분이 베델교회에서 예배와 교회생활을 시작하며 예상조차 못했던 엄청난 은혜의 쓰나미가 그의 삶을 덮친 것이다. 그는 성경의 돌탕이 걸었던 길을 아 돌아섰고 하늘 아버지 집의 문턱을 드디어 넘어섰다. 영접을 받았고 새 옷을 입었다. 돌탕으로 뒤집어진 것이다. 자신은 죄인이고 아버지의 아들이라고 도저히 말 할 자격이 없다는 겸손의 사고방식이 그를 뚫고 들어갔다. 얼마나 냄새나는 교만인가! 하나님의 교회에서 얼마나 주제넘은 방자함이었는가! 돌탕의 사고방식으로 하나님과 사람들 앞에 무너져내린 이 형제는 신기하게도 그 후 단 한 번도 어떤 제직회에서나 회의에서 입을 열어 본 적이 없다. 성질을 드러낸 적이 없다. 목회자는 물론 동료 직분자들을 공격한 적이 없다. 과거 그 형제가 옛 교회에서 어떤 사람이었는지 우리는 알 필요조차 없었다. 오랜 시간이 지난 후 우연히 베델교회를 방문했던 그 형제의 옛 교회 교인 한분은 그토록 달라진 그 형제를 대하며 입을 다물지 못하였다. 심지어 주일 예배 후 내 사무실에 자청하여 들어와 자신이 얼마나 놀랐는지를 얘기하며 새삼 그 형제의 지난 행적들을 말해주는 것이었다. 


 그는 예수와 성경의 진리가 지배하는 새로운 사고방식의 소유자가 된 것이다. 억지나 고집으로 남을 지배하려고 하지 않았다. 남을 섬기는 것이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 새로운 능력이라고 하는 사고방식으로 낮은 자리로 내려왔다. 아내를 위하는 것이 곧 자기를 위하는 것임을 고전 13장의 사고방식 그대로 누리고 있었다. 결국 사고방식이 돌탕의 영향권이 되는 것이다. 십자가의 사고방식을 받아들이면 세속적 사고방식은 끝나게 된다. 그 형제는 지금도 베델교회의 peace-maker들 중의 한명이다. 그는 돌탕이다!! 예수는 열심히 믿어도 사고방식은 한번도 변하지 않은 교인들이 수없이 많다. 그런 교인들을 섬기며 도무지 소망이 안보이는 한국교회 목회자들에게 무엇이 가장 목마르고 간절할까? 위에 소개한 형제와 같은 돌탕들이 봉사도 하고, 헌신도 하는 그런 목회하고 싶은 목마름이 아닐까! 그것이 돌탕목회이다! 

 

8. 허영끼


종교가 썩는 추한 냄새 중의 하나가 허영끼이다. 예수님께서 이 추한 냄새가 얼마나 역겨우셨으면 심지어 “회칠한 무덤”이라는 표현까지 쓰셨을까! 겉만 화려해지고 위선과 허영만 남는 소위 기독교인들이 유럽과 미국에, 뿐만 아니라 어느새 한국교회 속에 넘쳐난다. 부유해지고 지식이 높아지고 갖가지 명품과 호사를 누리다보니 허영이 쌓였다. 이 허영끼를 교회 안에서까지 보게 된다. 신앙은 경건이지 허영이 아니다. 허영이 덮은 교회에서 성령은 촛대를 옮기신다. 런던의 웨스트민스터 애비에서 그것을 보았고, 가든그로브의 크리스탈교회에서 그 비애를 느껴보았다. 신앙이 메마르고 종교가 껍질로 덮이면 그 자리에는 빈 깡통같은 허영만 남는 것이다.


하늘 아버지께 뉘우치며 돌아와 돌탕으로 변화되면서 나 자신 가장 부끄러웠던 것이, 내 안에 넘실대던 허영심이었다. 성결교 장로의 아들이며 어려서부터 교회에서 자라났다는 그것만으로도 교회를 다 아는 것처럼 허영을 부렸다. 성경을 제대로 읽어본 적도 없는 주제에 신학이요 교리를 함부로 주절거리던 허영끼가 이제 생각하면 숨이 막히고 심지어 어디 숨어버리고 싶은 심정이다. 어려서부터 주일학교 동화대회에 나가고 중학교 때부터 교회 성가대의 피아니스트로 활약한 것 하나만 가지고도 나의 허영끼는 극에 달했다. 더러운 죄로 영과 혼과 육이 깨끗한 것이 없는데 왜 그렇게 잘난 척, 다 아는 척, 허영으로 가득했는지... 그런 나를 참아주시고 기다려주신 하늘 아버지의 은혜가 하늘 같고 바다 같을 뿐이다. 


그 허영끼를 뉘우치며 많이도 울었다. 아버지께 돌아온 돌탕들의 극적인 변화는 눈물이 많아지는 것이다. 눈물은 그 자체가 메시지이다. 돌탕들이 점점 늘어나면서 베델교회는 모이면 울었다. 예배시간에 울고, 노숙자들 밥 먹이다가 울고, 찬양하다가 울고, 성가대 하다가 울고, 대표기도 하던 강단 위에서 장로가 울고 집사가 울었다. 돌탕이 된 후에는 예수라는 이름만 불러도 가슴이 뜨겁고 천국시민이라는 호칭만 들어도 마음이 울렁거렸다. 3절짜리 짧은 찬송을 요구하며 허영으로 반질거리던 교인들이 돌아온 탕자가 되더니 5절, 6절짜리 긴 찬송을 불러도 또 한번 더 부르자고 청한다. 1시간도 넘는 먼 거리에서 일주일 몇 번을 예배드리러 오면서 교회가 먼 것이 아니고 집이 멀다는 것이다. 그런 돌탕의 새 체질 속에 허영같은 것이 있을 수 없었다. 모든 것이 값없이 받은 은혜라는 새로운 사고방식 속에서 그 오만한 허영끼들이 베델교회에서 줄어들기 시작했다. 오히려 그런 허세를 부끄러워하게 되었다. 돌탕목회의 가장 큰 열매 중의 하나는 허영끼의 추방이었다. 그런 돌탕목회를 해 본 것이, 그리고 그런 교회의 담임목사가 되어 본 것이 나는 행복하다. 

 

9. 방황끼


인간이라는 보통명사의 개념 중 하나는 사이적 존재라는 뜻이다. 어떤 의미에서 인간은 사람 사이에서, 이성 사이에서, 선과 악 사이에서, 가치관 사이에서, 인생관 사이에서 끝없이 방황하며 그 사이를 오가는 존재라고 할 수 있다. 하나님 앞에 나와서도 감정의 기복에 따라 신앙이 흔들리고 기분에 따라 사랑도 미움으로 변하고 상황에 따라 강하던 신앙이 의심으로 덮인다. 참으로 인간은 믿을 수가 없는 존재이다. 사람은 사랑할 대상이지 믿을 대상이 아니었다. 남자든 여자든 그 속에는 인생을 향한 뿌연 안개 같은 의구심들이 자리잡고 있으며 기대와 실망 사이에서 방황하며 몸부림친다.


돌탕으로 변하고 구원의 확신을 갖게 된 후로 더 이상은 내 속에 꿈틀거리는 방황끼에 시달리지 않게 되었다. 하늘 아버지께 두 손 들고 돌아와보니 지난 날의 내 발자취들은 방황 때문에 비틀거린 곡선 투성이었다. 그런 내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 돌아와 보니 더 이상 곡선이 아닌 직선의 인생길을 살 수 있는 것을 절감하게 되었다. 돌고 돌며 곡선을 만든 인생은 손해 투성이었는데 늦게나마 주를 향한 직선을 그으며 살게 되니 많은 것들이 간단해졌다. 복잡한 것들이 단순해졌다. 쓸데없는 시간, 쓸데없는 비용, 쓸데없는 갈등과 미움들을 차츰 버리게 되었다. 그래서 바울사도는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갈2:20)고 선언한 것임을 깊이 깨달았다. 


돌탕의 눈을 뜨고 주변을 바라보니 삶은 직진하면 되는 것이었다. 직진으로 신학대학원을 마쳤고 직진으로 목사가 되었으며 직진으로 미 동부에서 서부 캘리포니아 얼바인으로 왔다. 목회하면서도 직진으로 복음을 선포했고. 방황없이 아내를 더 사랑하게 되었다. 교인들을 사랑하게 되었다. 세상 것들이 무의미해졌다. 뭘 해야 되는지, 이렇게 살다가 끝나는 것인지 등등으로 나를 괴롭히던 질문들이 어느새 내 속에서 사라졌다. 세상 향락 속에 들어가 썩어빠진 돼지 먹이 같은 것을 먹던 나였는데, 지금 나는 예배하고 있다. 지금 나는 사랑하고 있다. 많고 많은 순간들을 방황하며 살아왔는데 이제는 매 시간 아오는 여러 종류의 순간들을 의미없이 살지 않으려고 성령의 도우심을 받고 있다. 물론 지금도 많이 쓰러지고 좌우를 두리번 거릴 때도 많지만 하늘 아버지를 향한 직선의 삶인 것은 확실해 졌다. 행복이 되었고 자부심이 되었다. 방황은 없어도 되는 것이다. 돌탕과 방황끼는 상극이다. 이미 내 손가락에 하늘 아버지가 끼워주신 영원한 집의 상속반지가 끼어있지 않는가!! 그것이면 됐지 뭐가 더 필요한가?! 


베델교회에 부임해 보니 교회가 있는 얼바인이라는 동네가 살기는 참 좋은 지역이었다. 학교도 좋고, 주민수준도 높았고, 안전은 미 전국에 첫째로 손꼽히는 소도시였다. 베델교회 교인들도 속된 말로 물이 좋았고 질도 좋았다. 대부분이 안정된 중산층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돌탕으로 변한 내 눈에 보이는 것은 그들 속에 꿈틀거리는 방황이었다. 돈을 많이 벌고도 삶의 방향을 몰랐고 배우자들이 잘나고 아름다워도 만족이 없는 방황끼의 눈빛을 보았다. 아이들을 대학까지 다 보낸 후 공허해진 그 얼굴빛들이 외로워 보였다. 그러나 부임한 후 첫 예배부터 방황하던 나의 삶이 주님의 손으로 새로 빚어진 돌탕의 존재가 되었다는 간증과 눈물이 섞인 설교를 들으며 그 당시 베델교인들은 거의 모두가 함께 눈시울이 붉어졌다. 눈물이 흘렀다. 


이런 저런 모임과 예배와 베델동산에서 계속하여 돌탕들이 탄생하고 있었다. 예수 때문에 방향이 잡히니까 방황이 없어지게 되었다. 그런 가운데 한번은, 지금은 장로가 된 분인데, 약간 불평 비슷하게 “손목사님이 우리 교회에 오신 다음부터는 1년에 한번씩 가던 라스베가스도, 염소고기 먹으러가던 빅베어 마운틴도, 바다 낚시 가던 뉴포트 앞 바다에도 한번도 못 가봤다” 고 탄식같은 얘기를 해서 같이 웃었다. 그러나 곧 나의 반격이 그를 향했다. 왜, 억울하냐고, 그런 곳에 안가고 가정과 교회와 직장의 세 꼭지를 삼각형처럼 오가는 것이 무슨 문제가 있느냐고, 돈 잃게했으며 부부 사이에 문제 생기게 한 것 있느냐?..고 물었다. 그 순간 우리 모두는 폭소를 터뜨렸고 그 분은 손사래를 치면서 뒤로 물러섰다.

 

돌탕이 된 후 달려가다가 문득 뒤돌아보면, 과거에 그렇게 방황하던 것들이 어느새 사라진 것을 깨닫게 된다. 지금도 생각하면 그 때 나의 반격이 참으로 멋있었다. 방황이 없어진 돌탕의 인생길에는 돈도, 시간도 헛된 낭비가 없으며 손해도 없어지는 것이다. 지금도 방황하는 교인들이 한국과 해외에 많이 있다. 심지어 목회자들 가운데도 이길 저길 방황하며 헤메는 경우들을 보게된다. 그렇게 끝날 수는 없는 것이다. 하늘 아버지에게 돌아와, 돌탕이 되어 드디어는 벗어나고 걸어나오고 돌아와야 한다. 돌탕으로 아버지 집에 돌아온 것은 방황 끝!!이라는 문패를 달게 된 영광인 것이다. 

 

10. 교회론


돌탕으로 아버지께 돌아와 용서받기 전까지 가장 혼란이 심했던 부분은 아마도 교회에 대한 인식의 혼란일 것이다. 오늘의 기독교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교회론이다. 교회를 다니면서도 많은 사람들이 교회가 무엇인지를 착각하고 있다. 코끼리 다리나 배를 만지는 격으로 교회를 자기 위주로 해석하고 있다. 실제로 목회 현장에서 교회론이 잘못된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그런데 90대 초반부터 베델교회에서 돌탕들이 쏟아져 나오며 크게 달라진 것 중의 하나가 교회론이었다. 


한국도 그렇겠지만 특히 해외 한인교회들 속에는 정말 탄식스런 일들이 많이 일어난다. 자기 말 안 듣는다고 주일 아침에 일찍 나와서 교회 출입문에 X표로 재목을 대고 못을 박아 교인들의 예배를 막아버린 미 중서부 지역 교회의 직분자가 회자되고 있다. 담임목사를 혼내준다고 매월 봉급을 회계집사인 자기 집에 와서 억지로 받아가게 하는 교회도 있다. 나이 든 권사들이 새로 부임한 젊은 담임목사의 사모를 교회 식당 뒷켠으로 데리고 가 따귀를 때리며 위협을 준 교회 이야기가 실제로 일어난 현실이다. 교인들을 이리 저리 패가 되어 싸우게 하고는 결국 환멸 가운데 다 교회를 떠난 후 교회건물을 자기 소유로 등록한 목사의 얘기까지 한 두 번이 아니다. 교회에 대한 개념이 잘못돼도 너무 잘못되었다. 내가 베델교회에 부임하기 1년 전에는 두 파로 갈라져 한참 싸우는 중에 어느 집사 하나가 교회 파킹랏에서 권총을 꺼내 휘들렀다는 얘기까지 들었다. 과연 교회는 신앙인에게 무엇이란 말인가


그런데 돌탕목회 현장에서 반대급부로 크게 놀라게 된 것 중의 하나가 돌탕들의 교회를 향한 새로운 감각이었다. 교회론이 달라진 것이다. 그들에게 교회는 더 이상 건물이 아니라 성전이 되었다. 하나님을 만나는 예배의 집이었다. 교회와서 생명의 떡을 먹는 것이 그렇게 기다려졌다. 교회는 예수님의 몸이라는 교회론을 진실로 받아들여 기꺼이 자신이 예수와 한 몸이라고 고백하는 것이었다. 어디 출장을 갔다가도 토요일 밤이나 주일 이른 아침에 공항에 도착하여 교회로 달려오는 돌탕들과 자주 마주쳤다. 피곤 때문에 자더라도 차라리 예배시간에 아버지 집에 와서 자겠다는 간증을 들으며 여러번 눈물을 흘렸다. 교회를 성경대로 받아들이니까 함부로 교회에서 경거망동을 못하는 것이다.


결국은 나 자신이 하나님의 성전이라는 믿음에 이르게 하였다.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고전3:16)의 진리를 알게 된 것이다. 하나님의 성전된 나를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는 성경의 말씀을 실감하게 되었다. 우선 나 자신부터가 와싱톤 부활절 연합새벽예배 시간에 성령의 임재를 체험한 후 돌탕으로 돌아오면서 자연히 술과 담배를 끊게 되었다. 술은 몰라도 담배만은 절대 끊을 수 없다고 아내 앞에서 호통치던 나였다. 성령께서 나를 자기 성전으로 만드시면서 하루 아침에 내 입에서 담배가 없어졌다. 내가 누구인지를 알게 된 다음부터는 내 몸을 함부로 더럽힐 수 없었다. 그래서 성령이 내게 임하며 강한 변화를 겪게 하시던 그 당시 내 입에서 자주 나오던 표현은, “나는 나인줄 알았더니”라는 말이었다. 나는 내가 아는 “나”가 전부인줄 알았다. 그러나 돌아온 탕자의 개념으로 깨닫고 보니 나는 내가 모르던 “나”였다. 예수께서 십자가에 죽기까지 사랑하신 “나”였다. 나를 성전까지 만드셔야 했던 하나님의 “나”였다. 베델교회 예배는 이같은 돌탕들의 새로워진 교회론에 힘입어 찬양이 뜨겁고 웃음이 많아지고 눈물 때문에 교회오면서 손수건부터 챙기는 예배가 되었다. 

 

11. 재물관


사람은 돈을 대할 때의 인격과 책을 대할 때의 인격이 따로 있다는 말이 있다. 어느 개혁신학자의 표현대로 진정 예수의 제자가 되었다면 심령의 중생 뿐 아니라 지갑의 중생까지 가야한다는 말이 실감는 것이 목회의 현장이다. 한마디로 그 사람의 재물관을 보면 그 사람의 신앙을 보는 것이다. 90년대 초반부터 터져나온 돌탕들의 변화행진에서 크게 놀라게 된 것이 십일조 교리를 대하는 돌탕들의 새로운 시각이었다. 십일조라는 말만 들어도 화를 내며 그나마 간신히 다니던 교회에 발을 끊어버린 남편들의 얘기를 여러 부인들에게서 들었다. 그러나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 예수 앞에 쓰러져 예배가 눈물이 되고 삶이 환희가 되어 달라진 남편이 주일 아침에 교회로 떠나며 십일조 챙겼느냐고 묻더라는 것이다. 이제는 당신이 내지 말고 내가 헌금시간에 바치겠노라고 헌금봉투를 달라는 것이다. 예수 십자가를 눈물로 바라보게 된 돌탕들의 영적변화가 재물관에서 터져나오게 된다. 돈을 버는 것이 돈을 바르게 쓰는 것과 일직선이 된 것이다. 이것이 수많은 돌탕들을 지켜보던 나의 결론이고 간증이다. 


십일조를 가르치는 설교를 들으면 거부감이 생기던 패턴이 차츰 없어졌다. 이 바람에 베델교회의 십일조 액수와 헌금액이 몇곱절 이상으로 늘어났다. 본격적으로 돌탕목회가 시작되기 전에 1년 예산이 50만불 수준이었는데 수많은 돌탕들의 숫자가 늘어나고 재물관이 달라지면서 헌금액수는 년 오백만불, 천만불로 급격히 늘어났다. “모든 것이 주께로부터 왔으니..”하는 찬송이 자신의 고백이 되었기 때문이다. 돈을 잘 버는 것도 중요하지만 돈을 잘 쓰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개념을 정리한 사람들이 바로 돌탕들이었다. 베델교회에서 만난 한 형제는 반도체 분야의 직장에서 배당받은 주식이 하루 아침에 대박이 되는 바람에 수백만불의 재물을 갖게 되었다. 십자가의 은혜 앞에 줄줄 눈물을 흘리던 이 돌탕은 아내와 의론 한 끝에 그 돈을 개인기금으로 쓸 수 없도록 선교를 위한 신탁구좌로 묶어버렸다. 그 후로 이 형제의 가정을 통해 이루어진 각종 선교사역은 일일이 꼽을 수가 없을 정도이다. 그랬더니 하나님께서는 이 형제가 쓰는 선교기금을 다시 더 채워주시느라고 바빠지셨다. 이것이 그분과 내가 가끔 나누는 영감어린 joke중의 하나이다. 하나님은 신앙을 제대로 가진 자들에게 재물을 더 주신다!

 

12. 교회 문턱


교회에도 문턱이 있다.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천국 열쇠를 주신 것은 천국 문을 열어주는데 쓰라고 주신 열쇠인데 그 열쇠를 천국 문을 잠그는데 쓰고 있다면 얼마나 어처구니 없는 것인가! 마찬가지로 교회 문은 열고 열고 또 열어주며 하늘 아버지께서 돌탕 반기신 것처럼 반기는 교회, 팔 벌리는 교회, 식구처럼 만드는 교회가 되어야 마땅하다. 그러나 실상은 교회 문턱이 너무 높아서 뒤돌아서는 영혼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베델교회가 돌탕교회로 소문나면서 가장 꼽히게 된 명칭은 그 교회는 문턱이 높지 않은 교회라는 말이었다. 주님께 온전히 돌아온 둘째 아들, 즉 돌탕들이 파킹랏 봉사를 휘어잡았다. 교회 문간을 차지해 버렸다. 예배 끝나면 새가족들을 교회 식당으로 이끌었다. 그런데 그렇게 섬기는 그들의 태도와 수준이 가히 전문적이라고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So professional". 


우선 웃음으로 넘친다. 허리를 굽히고 요즘 나쁜 표현이라고 하지만 꼭 무슨 기쁨조처럼 새식구들을 맞아들인다. 어디서 왔느냐, 왜 왔느냐고 물어가며 새로 온 분들에게 교회의 높은 문턱을 느끼게 하던 것은 옛말이 되었고 “참 잘 오셨습니다!”라는 한 마디로 마음 놓이게 한다. 정들게 한다. 그리고 참 잘 오셨습니다! 라는 인사말은 우리 담임목사님이 이 교회 부임하면서부터 쓰기 시작한 인사말이에요! 하는 말까지 덧붙인다. 교회가 오래되거나 대형숫자로 부흥하거나 모이는 교인들의 사회적 수준이 높을수록 가장 심각한 병을 앓게 되는 것이 교회의 문턱 병이다. 교회 문의 열쇠를 쥐고 목에 힘준 사람들이 주의 집에 오는 자들을 심사하듯이 맞이하는 태도는 당장이라도 없어져야 할 고질병이다. 그러나 돌탕이 되고보니 활짝 문 열고, 아니 먼 곳까지 나오셔서 상거가 먼데도 애타게 기다려주시던 하늘 아버지의 심정을 알게되는 것이다. 그래서 돌탕들이 차지한 교회 문은 점점 낮아지고 웃음이 넘치고 악수를 해도 두 손으로 잡고 흔든다. 


베델교회의 돌탕목회는 그것만으로도 소문이 나고 유명해졌다. 얼마나 좋은가! 얼마나 반가운가!! 베델교회의 문간은 계속하여 새로운 돌탕들이 나타나면서 영접 담당자들의 얼굴이 바뀐다. 그러나 어떤 분은, 일찍이 서울의 한 전통적인 교회를 다니다가 얼바인에 와서 성령의 힘으로 돌탕이 된 참으로 마음과 얼굴이 고운 분인데, 이 한분의 권사님이 베델교회 문간의 따뜻함과 영접수준을 높여준 것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벌써 십 몇년을 그 자리에 서있다. 다른 교회들이 이분을 영접분야의 특강 강사로 모셔가도 좋을 것이다. 

 

13. 과거를 영광으로!!


돌탕이 되면서 감격하는 것 중의 하나가 과거에 겪었던 삶의 실패와 아픔, 뼈저린 사연들과 억울함들이 수치에서 영광으로 변해가는 것이다. 옥한흠 목사님의 표현대로 고난이 변장된 축복인 것을 받아들인다. 기도가 감사가 되고 예배가 찬양이 된다. 내 일생 목회에서 가장 사랑하게 된 형제 중의 한 분은 베델동산에 올라와 수없이 간증했고 수없이 감동받게 했다. 이혼을 겪으며 딸 하나 있던 이 형제가 마찬가지로 이혼하고 딸 하나 있던 지금의 부인과 결혼하였는데 둘 사이에 아들 하나가 태어난 얘기를 편안하게 풀어나간다. 아이들이 소속이 다 다르다는 토까지 붙인다. 듣는 사람들 속에는 아우성이 일어난다. 아니 저런 얘기를 저렇게 들어내놓고 해도 되는가! 그러나 한편에서 듣고 있는 그 분의 아내, 권사님은 조용한 웃음을 얼굴에 띄우고 있다. 예수를 만나 돌탕이 되고 손인식 담임목사까지 저리가라 할 만큼 돌탕 중의 신화적인 돌탕이 되었다고 자타가 공인하는 이분의 결론은 언제나 간단명료하다. 예수 만나기 전에는 저희 가족이 “콩가루 가족”으로 훅 불면 다 흩어질 가정이었는데 예수 만나 돌탕이 된 후는 “인절미 가족”이 되어 누구도 뜯어낼 수가 없는 은혜의 찰떡이 되었노라고!! 코믹하게 풀어가는 그 분의 간증을 들으며 처음엔 다 웃다가 결국은 다 울어버리고 만다. 할 말이 없다. 과거의 그 모든 아픔과 상처들이 주님을 높여드리는 영광으로 쓰여지고 있는 것이다. 


과거를 숨기고 현재를 과장하며 십자가 앞에서 이중적으로 사는 것은 고통이요 또 다른 무거운 짐이다. 그러나 하늘 아버지의 집에 돌아와 그 분의 품에 안겨보니 나의 망가지고 초라했고 부끄러워서 남에게 감추고 싶었던 과거의 일기장들이 눈물로 적셔지며 영광스런 성령행전으로 책 제목이 바뀌는 것이다. 돌탕은 하늘 아버지가 써 주시는 history, 즉 His story 인 것이다. 

 

(물론 사람들이 모인 교회에서 돌탕목회라 할찌라도 지금까지 기록했던 아름답고 기적적인 일들만 일어난 것은 아니다. 5월호 부터는 본격적으로 다른 측면의 교훈과 현장을 다룰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