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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자신이 중국에서 구출한 14세 탈북 소녀와 서울에서 반갑게 재회한 유상준(왼쪽).

 

탈북민 유상준(54)의 첫인상은 어수룩해 보인다. 말주변도 없다. 느릿느릿 말하다 “저처럼 북에서 농사나 짓던 놈이 뭘 알겠습니까”라며 자주 수줍은 표정을 짓는다.

알고 보면 그는 아주 빨랐던 사람이다. 남한으로 오는 게 아주 어려웠던 2000년 12월 남한으로 왔다. 한국 입국 탈북민 3만여 명 중 선착순 1000명 안에 들어간다.

남한에서 상상했던 그의 꿈은 2001년 7월 부서졌다. 아버지를 찾아 탈북했던 하나밖에 없는 12세 아들 철민이가 몽골 국경을 넘다 굶주림과 탈진으로 숨졌다.

차인표가 열연한 탈북 영화 ‘크로싱’(2008년)의 실제 인물이 유상준이다. 

 

아들을 잃고 1년 넘게 우울증, 자살 충동과 싸우던 그는 2003년 훌쩍 중국으로 건너갔다. 
“중국엔 한국으로 오는 길을 모르는 탈북민이 너무 많았고, 한국엔 혈육을 데려오지 못한 탈북민이 너무 많았습니다. 먼저 온 내가 이들을 데려와야겠다 생각했죠.”

2004년 그가 첫 번째로 구출한 사람은 철민이 또래인 14세 탈북 소녀였다. 그 소녀는 지금 성균관대를 졸업한 27세 여성으로 성장했다. 

이듬해엔 직접 새 탈북루트를 개척했다. 당시만 해도 탈북 브로커들은 한국으로 보내주는 대가로 수백만 원씩 받았다. 

유상준은 한 푼도 받지 않았다. 한국에서 7만∼8만 원씩 일당을 받으며 몇 달 일해 돈을 벌어선 중국으로 건너가 탈북민을 구출했다.

돈이 떨어지면 다시 한국에 와서 막노동을 했다. 구출한 사람 중 몇 명이 고맙다고 자발적으로 돈 봉투를 건넬 때도 있었지만 100만 원을 주면 50만 원은 다시 돌려줬다.

그 이상은 받아본 일이 없다.

 

유상준의 도움을 받아 한국까지 온 탈북민은 500명이 넘는다. 이 중 90여 명은 그가 직접 인솔해 몽골 국경을 넘었다.

그러던 중 2007년 7월 중국 공안에 체포돼 5개월 동안 수감생활도 했다. 내몽골 감옥에서 여름옷을 입고 영하 40도를 견디느라 이가 다 빠질 정도로 골병이 들었다. 

한국에 돌아온 뒤 그는 1년 넘게 병치레를 하면서도 세탁소 운영과 아파트 경비 일로 돈을 모았다. 그 돈을 들고 2009년 중국에 건너갔다. 다시 탈북민을 돕기 시작한 것이다. 

한국에서 대북전단(삐라) 풍선이 뉴스에 나오는 것을 보고 그는 “중국에서 대북전단을 날리면 북한 깊숙이 갈 수 있겠다”는 생각을 떠올렸다. 유상준은 중국에서 풍선 가스 구매처를 찾아다녔고, 인쇄물을 찍었다. 그러다 2011년 5월 중국 국가안전국에 잡혔다. 그를 신고한 것은 다름 아닌 탈북 여성이었다. 

“눈을 가리고 팬티만 입은 채 24시간 동안 내내 맞았습니다. 2명씩 교대로 들어와 때렸는데 너무 맞아서 지금도 기억력이 성치 못합니다.”

그는 다행히 북송되지 않고 한국으로 추방됐다.

몇 년 뒤 자신을 신고했던 여성이 서울에서 탈북 여성을 대상으로 하는 상담사로 일하는 것을 우연히 보고도 “피치 못할 사정이 있었을 것”이라며 복수를 하지 않았다. 

 

다시 중국에 갈 수 없게 된 유상준은 한국에 와서도 대북전단을 날려 보내는 일을 하고 싶었다. 그렇게라도 해야 원통하게 숨진 아들의 한을 풀 수 있을 것 같아서였다.

대북전단을 보내는 곳을 몇 개월 따라다녔지만, 핵심 ‘영업비밀’은 가르쳐주지 않았다고 한다. 탈북 루트를 혼자 개척했던 10년 전처럼 그는 이번에도 혼자 시작했다.

새벽에 일어나 출근 전 풍선 타이머를 연구했고, 퇴근해서도 연구에 매달렸다. 동네 재활용장에 사정을 해서 선풍기 타이머들을 모두 뜯어오기도 했다.

0.01mm 니크롬선(발열체의 일종)을 꿰느라 목 디스크가 걸렸다. 잠을 못 자며 4개월 꼬박 고생해 수천 m 상공 영하의 온도에서도 작동하는 타이머를 만들어냈다.

 

유상준은 요즘 지하철 전동차 청소 회사에서 계약직으로 일한다. 월급은 150만 원 남짓. 주거비와 교통비, 통신비, 쌀값 등을 다 합쳐 자기를 위해 쓰는 돈은 30만 원도 안 된다.

그는 임대 및 관리비가 13만 원인 임대주택에 홀로 살면서 돈이 아까워 난방도 틀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오랫동안 탈북 고아 2명을 후원했고, 지금도 탈북자 구출 후원금을 보낸다.

아들 둘을 군에서 잃고 홀로 사는 옆집 할머니를 위해선 TV와 전화기를 사주고, 눈 수술비까지 보탰다. 


몇 달 월급이 모이면 남의 차를 빌려 대북전단을 조용히 북에 날린다. 그러곤 또 돈을 모은다. 필요한 사람에겐 자기가 연구한 노하우를 전부 가르쳐준다.

유상준의 한국 생활 16년은 이렇게 흘렀다. 그의 인생사를 듣다 보면 나도 모르게 울컥해진다.

그는 자랑할 줄 모른다. 위에 쓴 유상준의 일대기는 그의 지인들에게 듣고 본인에게 확인한 것이다.

하나를 하고 열을 했다고 자랑하기 급급한 이 세상에서, 이런 ‘바보’가 탈북자 중에 소문 없이 숨어 있다는 것이 그렇게 감사할 수가 없다. 

 

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http://news.donga.com/Main/3/all/20170126/8260040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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