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인식목사 연재 목회칼럼

돌탕으로 시작하여 돌탕으로 끝을 보다!

 

내 나이 만 65세가 되던 2014년 12월 31일에 23년을 담임목사로 섬기던 얼바인 베델교회를 떠나면서 내 머리에 떠오른 단어는 두가지, 하나는 “은혜”였고 또 하나는 “돌탕”이었다. 돌탕이라는 용어는 베델목회 23년 동안 끊임없이 성도들과 나누던 개념인데 “돌아온 탕자”를 줄인 말이다. 집을 나가고 아버지를 떠났던 탕자가 드디어 돌아왔고 옷을 입혀주며 반지를 끼워주는 아버지 품에서 잃었던 영적 존재의 회복을 누리게 되는 바로 그 “돌탕”을 말하는데 이것이 내 생애 전체의 표현이고 또한 베델교회 목회의 특징이기도 하다. 돌이켜 보면 나의 목회와 베델교회의 폭발적 성장은 이 한마디, “돌탕”으로 시작되어 “돌탕”으로 마무리를 지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1990년 12월 첫주에 캘리포니아의 아름다운 도시, 얼바인에 소재한 베델한인교회의 3대 담임목사로 취임할 때만 해도 내 이름 석자를 아는 교포들과  목회자들은 그리 많지 않았고, 솔직히 나도 나 자신을 잘 몰랐다고까지 할만큼 그 당시를 회고해 보게 된다. 미 동부에서 17년이 넘게 살다가 37살의 아내와 중2 아들, 초등학교 4학년의 딸을 데리고 광대한 대륙을 종단하여 말로만 듣던 캘리포니아의 한 작은 교회로 목회하러 달려온 것이다. 메릴랜드와 미시간에서 각각 전도사(3년), 유학생 교회 담임목사(1년 반), 부목사(7년)을 경험한 나는 아무리 보아도 신학대학과 신대원 7년 훈련을 합해본들 한 사람의 책임있는 담임목사로는 턱없이 부족한 42세의 젊은 목사일 뿐이었다. 매 주일 설교를 어떻게 써야 하는지, 제직회나 당회는 무슨 말과 태도로 임해야 하는지, 교인들을 심방하면 어떤 것들을 해야 하는지,..내 머리 속은 그저 막연하기만 할 뿐 담임목회를 시작하는 자신감이란 것은 있지도 않았다.
 
부임할 때의 베델교회

 

1990년 담임목사로 부임할 당시 베델교회는 목사와 장로로 분열된 내분을 혹독하게 치룬 후 겨우 흔들림을 멈춘 상태였고 성인이 약 180명, 2세들이 대학생들까지 다 합해 100명 정도 되는 규모이었으며 내 기억으로 그 한해 예산이 40만불을 조금 넘었다. 교인들은 아직도 예배가 끝나면 교회 뜰과 파킹랏에서 교회 분규중에 일어났던 가슴 아픈 일들을 입 밖에 꺼내기가 일수였다. 당회나 제직회에 들어가면 툭툭 서로를 공격하고 비난하는 언사들이 섞여나오는 평신도들의 적나나한 태도를 바라보며 그저 놀라고 당황할 뿐이었다.

그러나 비할 바 없이 더 놀라게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와 역사하심이었다. 담임목사로 취임한 후, 주일 예배에 설교를 시작하면 온 회중이 웃고 울며 바짝 마른 스폰지가 물을 빨아들이듯 선포되는 멧세지에 열중하는 것을 보게 된 것이다. 설교하는 나 자신이 스스로 놀라 교인들을 바라보며 어이가 없을 정도였다. 삽시간에 베델교회가 은혜받는 소식이 주변으로 퍼져나갔고 새 목사의 설교를 듣겠다고 새 교인들이 밀려드는데 어느 주일에는 심지어 그날 새로 온 교인들이 85명에 이르렀다. 담임목사인 나도 놀라고 교인들이 놀라고 주변 교회들이 놀라고 남가주 일대의 교포들이 놀라게 되었다. 1년이 채 지나기 전에 처음 부임할 때 180여명이었던 성인 교인들의 예배 참석 숫자가 천명을 넘어서게 되고 그 당시 작은 성전은 몇 번의 예배에도 불구하고 입추의 여지가 없어서 가운데 앉은 분들은 공기가 탁해 숨쉬기가 힘들 정도였다. 이것은 담임목사인 나를 포함하여 그 누구도 예상조차 못했던 폭발적 부흥의 상황이었고 왜 이렇게 한인사회에 유례가 없던 대 부흥이 일어나는지 설명할 수가 없었다.

        
돌탕목회를 권고하신 하나님의 계획

 

생각해 보면, 바로 그 때가 수많은 돌탕들이 캘리포니아 얼바인 땅에서 태어나기 시작하는 시점이었고 예고편이었다. 지금에 와서 그 때를 깊이 통찰하며 되돌아 보게된다. 내 젊은 시절에 끔찍한 방황과 방랑, 좌절과 이혼의 위기에 빠져있던 나를 찿아와 주시고 주의 보혈로 씻어서 돌탕이 되게 만드신 하나님께서 나를 돌탕목사로 만들어 베델교회의 담임목사로 보내셨던 것 아니겠는가!! 하나님 아버지께서 나 같은 돌탕 중의 돌탕을 이렇게 사용하시려고 3천 마일이나 떨어진 미 동부에서 서부로 옮겨주신 것이 아니겠는가!! 이것이야말로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이며 가슴이 벅차는 깨달음이 될 수 밖에 없었다.

담임목사로 취임한 이후 설교단에 서면 나는 서슴없이 내가 돌탕 중의 돌탕인 것을 자백하고 선포했다. 장로의 아들로 성장하며 그것이 내 삶의 모판이 된 모태신앙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할 짓 다하고, 놀 것 다 놀며, 두 얼굴의 이중성 가면을 쓰고 다녔던 나 자신을 거침없이 털어놓는 바람에 어느새 내 설교는 story-telling 설교라는 이름이 붙게 되었다. 주의 성령이 어떻게 나를 찿아와 쓰러뜨리고 뒤집어 놓으셨는지, 그래서 어떻게 내가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고 원수 같았던 아내 앞에 무릎 꿇고 용서를 빌게 되었으며 그토록 즐기던 술과 담배와 세상잡기에서 손을 떼게 되었는지, 그래서 변화되다 못해 결국 목사까지 되기에 이르렀다고 하는 솔직한 고백을 설교 중에 들으며 교인들은 한 사람씩, 한 사람씩 울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설교를 듣고 예배를 마친 후 몰려나오는 교인들 중에 내 손을 잡고 울어버리는 성도들이 한 둘이 아니었고 심지어 지난 주간에 자기 집으로 전화 한 적 없느냐고 따지기를, 어떻게 자기 집에서 벌어지는 얘기들을 설교 중에 인용하느냐고 물어보는 남편들까지 마주치게 되었다. 결국 인간의 삶은 거기서 거기에 불과한 것이고, 목사이든 평신도이든 돌탕이 되어 아버지 하나님 품으로 돌아오는 스토리는 별 차이가 없는 것이어서 나의 간증이 자기 집 얘기처럼 들린 것이다.

결국 미 서부 캘리포니아 얼바인에서 와서 시작한 나의 담임목회는 돌탕에서 시작되고 돌탕으로 끝났다고 생각하는 것이 우리 부부의 결론이다. 돌탕이란 개념이 깨우쳐 주는 것은, 무조건적으로 받아주신 하나님의 은혜 앞에서 교만할 자는 없어야 하는 것이다. 아버지 것을 다 탕진해버린 탕자를 새 사람 만들어 주신 은혜는 절대은혜이다. 무엇 하나도 사람이나 하나님 앞에서 자랑할 것이 없고, 부끄러울 것이 없고, 숨길 것이 없었다. 내 모습 이대로 주 받아주셨으니 담임목사 하는 동안 별 소리 다 듣고, 별 힘든 사람 다 겪고, 별 종류의 고난 다 겪었지만 하나도 억울할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나를 목사로까지 만들어 세우신 그 분의 은혜와 사랑은 그 모든 것을 뛰어넘는 절대은혜였던 것이다. 늘 그 마음과 그 태도로 예배를 인도하며 교인들을 대하고 웃음을 띄고 허리를 굽혔다. 억지로가 아니라 진심이었다. 담임목사의 그런 돌탕 태도가 또 다시 교인들의 마음을 열었고 수많은 교인들이 굳어졌던 마음을 풀고 오랜 신앙의 관습과 껍질을 칼로 도려내며, 우리 베델교회는 돌탕들의 공동체가 되어갈 수 있었다.


변질되지 않은 돌탕목회관

 

제일 감사한 것은, 나와 우리 부부의 돌탕이 된 간증과 태도가 은퇴하는 날까지 크게 바뀌지 않은 것이다. 부임할 때보다 나이는 23년이나 더 먹었고 4식구가 와서 이제는 9식구로 우리 가정이 늘어났으며 겨우 deposit을 하고 구한 집이 지금은 은행이자도 없는 내 집이 되었다 하더라도 아버지를 떠나 세상의 세속에 물들었던 나를 조건없이 다시 받아주신 하나님의 사랑 앞에서 한시라도 건방져지거나 은혜를 망각하는 늪으로 떨어질 수가 없었다. 수천명이 모이는 대형교회 목사라고 나를 마주치는 사람들이 알아주어도 여전히 끄떡없이 우리 부부의 마음과 신앙과 섬김은 변질되지 않았고 오히려 그것을 좋아하고 끌려오는 돌탕들의 무리가 계속하여 늘어나며 결국은 베델교회라고 하는 돌탕공동체의 양무리들이 되어 준 것이다.

작년 말로 65세에 담임목사를 내려 놓으면서 우리 부부가 간절히 원한 것은, 돌탕으로 시작하여 돌탕으로 끝나는 은퇴를 하고 싶었다. 돌탕으로 목회하다가 “들탕” (들돌아온 탕자)으로 끝나고 싶지 않았다. 나를 죄에서 구하시고 이렇게 목사까지 되도록 들어 쓰신 것은 오직 나를 알아주시고 받아주시고 믿어주신 그분의 절대은혜일 뿐이다. 무슨 수고를 했다고 나를 앞세울 수 있겠는가? 베델교회 23년 역사의 어느 한 장이라도 성령행전이 된 것이지 내가 이룬 것이 있겠는가? 베델교회의 주인이신 하나님께서 23년을 내게 맡기셨다가 다시 다른 목사에게 맡겨주시는 것이 은퇴이며 인수인계이지 그 의미 안에 무슨 사심이 있어야하며 무슨 요구가 있어야 하겠는가?! 이런 생각들이 나와 내 아내의 마음을 채워주셨기에 우리 부부는 정말 행복한 은퇴를 할 수 있었다.

40만불이조금 넘던 베델교회 일년예산은 천만불이 넘게 되었다. 베델교회는 1세, 2세 합하여 출석교인만 6천명이 되는 대형 한인교회가 되었고 2백명도 앉기가 힘들었던 작은 성전이 2천명을 수용하는 크고 아름다운 새 성전으로 변하였으며 자녀들을 위한 비전쎈터, 영어예배 채플, 호수를 내려다보는 현대식 수양관 등으로 성장하였지만 그중에 내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있을 수가 없다. 내게는 그리스도와 그분의 십자가만 있을 뿐이다. 그런 교회를 목회하도록 허락해 주셨던 주님이 감사하고 감격할 뿐이다. 그래서 그 마음 하나 가지고 나와 아내는 65세 되던 날에 교회를 떠났다. 그후 어느새 1년이 지났는데 나는 교인들 앞에 선포하고 약속한대로 교회 근처에 가 본 적도 없으며, 인계해준 후임목사와 (와싱톤 횃불대회에서 마주친 것 말고는) 단 한번 만난 적도 없고 전화 한 통화 한 적도 없다. 그랬더니 베델교회는 지금 부흥 중이고 온 교인들이 새 담임목사와 사랑의 밀월 중이다.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나는 23년을 돌탕으로 시작하였다가 돌탕으로 끝난 것이다. 


한국의 유명저널 "월간목회"에 연재되는 손인식 목사님의 칼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