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2012년 개발한 태블릿 PC. 사전·외국어·유희(오락) 등의 앱이 들어있다. ‘IT양성 지표 목록’은 평양을 방문한 재미교포가 본지에 제보한 것이다.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소니사 해킹의 주범으로 북한을 지목하면서 북한의 정보기술(IT) 능력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습니다. 인터넷이나 스마트폰 사용이 우리처럼 자유롭지 않은데 어떻게 고도의 해킹 기술을 보유할 수 있을까요. 북한의 해킹 능력은 철저하게 베일에 싸여 있어 가늠하기 쉽지 않아요. 특히 중국 등 해외를 무대로 해킹 조직과 인력을 운영하기 때문에 더 그렇습니다. 문 틈으로 살짝 나오는 정보들을 통해 IT능력을 짐작해보는 수밖에 없지요.

 평양과학기술대학에서 2011년 7월부터 6개월간 영어를 가르쳤던 수키 김이 쓴 『평양의 영어 선생님』이란 책엔 이번 얘기가 나옵니다. 한 학생이 정부 시스템을 해킹해 자신의 모든 학과 점수를 올린 일이 발각됐다고 합니다. 그런데 당국은 그 학생을 처벌하지 않고 모른체 넘어갔다고 합니다. 그 학생의 해킹 실력이 워낙 뛰어났기 때문에 해킹으로 올린 점수를 유지시켜 주었다고 합니다. 학생들에게 “해킹은 범죄가 아니라 잘 하면 용서받을 수 있는 기술”이란 생각을 갖게한 것이지요.

수키 김
 북한에서 명문으로 꼽히는 김일성종합대학·김책공업종합대학은 아예 해킹을 정규 과목으로 가르칩니다. IT를 전공하는 대학생들은 3학년 때 대개 해킹기술을 배운다고 합니다. 우수한 학생들은 해외에 연수까지 시키면서 기술을 고도화하도록 적극적으로 관리를 하는 겁니다. 현재 노동당과 국방위원회 산하에 모두 7개의 해킹조직이 있으며 1700여 명의 해커가 활동하고 있는 것으로 정부 당국은 파악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북한에도 해커란 용어가 있을까요. 없습니다. 해커는 콤퓨터지능범죄자로, 네티즌은 망시민으로 불립니다. 이밖에 학습장형 콤퓨터(노트북)·기술봉사소(PC방)·감정표(이모티콘) 같은 생경한 용어를 쓰고 있습니다.

 북한 IT의 현주소를 알 수 있는 말이 있습니다. “빌 게이츠는 알아도 저커버그는 몰라요.” 평양과학기술대학 학생들이 수키 김에게 건넨 말입니다. 북한 주민들은 빌 게이츠가 만든 윈도우를 사용하지만 저커버그가 만든 페이스북은 사용하지 못하기 때문이죠.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을 비롯해 극히 일부를 제외하고는 북한 주민들에겐 인터넷 사용을 허용하지 않기 때문이지요.

 빅터 차 미국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한국석좌는 최근 인터넷에 연결된 북한 컴퓨터 수가 1만2000여 대라는 주장을 내놨습니다. 1인당 1대꼴로 사용한다고 가정할 때 북한 인구(2500만 명)의 0.05% 정도가 인터넷을 사용한다고 볼 수 있지요.

 김 제1위원장은 미국 애플사 PC인 ‘아이맥’을 사용하고 있어요. 아이패드를 사용한다는 소식도 들립니다. 하지만 북한 주민들 가운데 여유가 있는 사람들은 2012년부터 북한이 생산한 ‘아리랑’ ‘삼지연’ ‘룡흥’이라는 이름의 태블릿 PC를 사용합니다. 이들 태블릿 PC에 ‘노블 네임(noble names)’이라는 항목이 있는데 여기로 들어가면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이 독립된 특수문자로 등록돼 있습니다. 도드라지게 두껍게 말입니다.

 북한 주민들은 자신들이 쓰고 있는 인트라넷을 인터넷으로 알고 있다고 합니다. 인트라넷은 주로 기업·학교 등에서 사용하는 내부 전산망입니다. 외부와는 연결돼 있지 않으니 인터넷과는 다르지요. 북한은 1997년 ‘광명’이라는 이름의 인트라넷을 전국적으로 개통했는데 정부 기관·공장·기업소 등 1300여 곳의 홈페이지가 광명에 연결돼 있습니다.

 본지가 단독 입수한 북한의 ‘IT양성지표 목록’을 보면 해킹방지 및 보안, 암호 및 인증, 정보유출방지 등에 관심이 많다는 것을 알 수 있어요. 특히 보안과 관련해 지능형 인터넷 보안장치를 개발해 상품화하는 걸 추진하고 있습니다. 북한은 IT를 통해 돈을 벌고 싶어합니다. 요즘엔 애플리케이션(앱)이 돈이 된다는 것을 알고 여기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다지 성과를 내진 못하고 있는 것 같아 보입니다. 왜 그럴까요. 고객 마인드가 부족하기 때문이죠. 

고수석 통일문화연구소 연구위원